배우 이설의 리트리트는 독서다. 책과 함께라면 무엇도 두렵지 않다. 드라마와 영화 현장을 오가며 틈틈이 책을 펴고, 소설을 읽는 팟캐스트 ‘사각사각’을 진행하는 이유다.

 

셔링 장식의 크롭트 톱은 마티유 바이 매치스패션(Matteau by Machesfashion). 셔링 장식의 스커트는 로드 바이 매치스패션(Rhode by Machesfashion).

당진에서의 화보 촬영 이후 <얼루어 코리아>와 다시 만났어요. 벌써 햇수로는 3년 전이에요. 2019년 멋진 가을날이어요.
맞아요. 이제 추억이 되었네요. 휴게소 음식이 맛있었어요.

휴게소 음식이 맛있었고, 서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죠. 에디터와 배우가 친구가 되는 게 드물지는 않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맥주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주야장천 책만 보는 책 친구가 되었어요. 
너무 뜻깊고 기뻐요. 왜냐하면, 책 이야기할 사람이 진짜 없었어요.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책 이야기를 하는 친구는 처음 만난 거예요. 에디터 허윤선과 서효인(시인)이라는 친구요.

화보 촬영 후 같이 책을 읽고 싶다고, 팟캐스트를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서 놀랐던 게 어제 같아요. 제가 어떻게 선택된 건가요?(웃음)
선택을 해주신 거죠. 선택을 받아주시고. 대뜸 말했는데 덥석 함께해주었어요. 짧은 인터뷰였지만 책 얘기를 나누는 게 정말 즐거웠거든요. 또 만나고 싶다, 또 얘기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우리가 ‛사각사각’이라는 소설 읽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이설을 완전히 믿지 못했어요. 제 마음속에는 연예인들은 변덕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조금은 있거든요. 스케줄도 일정하지 않으니 더욱 그래요. 그렇게 반신반의 시작한 팟캐스트가 벌써 1년이 되었어요. 
맞아요. 그런 변덕스러움이 있죠.(웃음) 놀라워요, 벌써 1년이 된 것이요.

벌써 1년이 됐고, 45권 이상의 소설을 같이 읽고 녹음을 했더군요. 한국인 성인이 평균적으로 1년에 7.5권 정도를 읽는다는 통계를 보면 대단한 독서량이에요. 
그렇다니 정말 뿌듯해요. 제가 오늘 독후감 기록을 봤는데 1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게 마흔네 권인가 그래요. 이제 반년 정도 지났으니까 그러면 한 달에 일고여덟 권이네요. 저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1년이. 혼자 읽는 것보다 훨씬 즐거워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그런 꾸준한 일을 한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요?
‘해소’인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 내적으로 쌓이는 게 있는데 쌓고 표현하고 같이 나누기도 하며 여러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요.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고 , 책을 선택할 때도 그날의 내 감정에 많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만약에 내가 여유가 많지 않다, 마음이 힘들고 괴롭다, 고민이 있다 그러면 일부러 밝은 소설을 고르게 되거든요. 재밌는 영화나 신나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반면에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좀 더 깊이 있는 책을 선택해요. 그럴 땐 고전문학이라든가, 한국문학을 읽고요.

그럼에도 책 친구들과 취향이 완전히 같진 않죠. 어떤 책을 더 선호해요? 
너무 다르죠. 신기해요. 저는 좀 더 상상할 여지가 있는 책을 좋아해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거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거나. 되게 현실적인 이야기도 좋아하고요. 최진영 작가님의 <겨울방학>이라거나. 최근에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은 <자기 앞의 생>과 <다시 올리브>였어요. 그 두 책에선 노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막연했던 내 미래에 대해서 많은 교훈을 얻은 느낌이에요. 많이 배운다고 해야 하나? 최근에는 기자님이 추천해준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읽었는데 왜 사람들이 에세이를 읽는지 이해하게 되었어요.

하하. 추천은 1년 전에 했죠. 원래 에세이는 끌리지 않는다고 했었죠? 
맞아요. 저는 에세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는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더라고요. 친구랑 만나서 친구 이야기 듣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에세이도 이제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읽는 동안 위로가 됐어요. 내가 내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많았는데 나도 사막을 건너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연예인은 늘 화려하고 친구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막은 어느 때고 찾아올 수 있어요. 
어제 느낀 건데 어떤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현장에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져요.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이 사회초년생이거든요. 의욕은 있는데 그걸 받쳐주는 경험은 부족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데 그럼 그렇게 대해주더라고요. ‘아이고, 이설 잘하고 있어.’ 조언도 많이 해주고 힘내라는 말도 해주고.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역을 맡으면 사람들이 좀 내버려두고, 웃긴 코드를 가진 배역이면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해줘요. 지난번에 매니저도 그런 말을 한 적 있어요. 다가가기 편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모르는 분들도 편하게 대해주고, 범죄자를 연기하면 그만큼 덜 다가온다고요. 그 말을 느끼고 있어요.

책을 읽을 때도 책의 톤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지곤 하잖아요. 밝은 걸 읽으면 행복해지는 것처럼요. 그런 감정의 스펙트럼을 책으로 경험하고 있나요? 
진짜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하잖아요. 애매모호한 게 딱 어울려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퇴적암처럼 감정의 결이 층층이 쌓여가는 게 느껴져요. 밝은 색깔이었다 어두운 색깔이었다 중간에 화석이 껴 있기도 하고 식물이 껴 있기도 하고 또 거기에 자갈이 얹혀 있다가 모래가 있다가 쌓여가는 게 느껴지는 게 신기해요. 그래서 책을 읽게 되니까 시나리오를 볼 때도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된 것 같아요. 캐릭터 해석을 할 때 엄청나게 도움이 돼요.

작년엔 전국을 촬영하러 누볐는데 그때도 항상 책을 읽잖아요?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책을 읽고. 주경야독처럼. 
쉼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작년에 촬영 때문에 지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쉬는 날마다 어디 안 나가고 방에서 책만 봤어요. 그 시간이 진짜 좋았어요. 그때 구병모 작가님의 <파과>랑 <아가미>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상상할 거리가 너무 많은 책이다 보니까. 특히 <아가미>는 인어를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이번 <얼루어>의 주제는 ‘리트리트’예요. 책을 만나기 전의 삶과 후를 생각해보면 어때요?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했어요?
일단 화가 좀 없어졌어요.(웃음) 나이에 따라 성숙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책에 별의별 인간상이 다 나오니까, 그냥 웬만한 건 이제 그러려니 하려고 해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 그 사람의 속마음이 드러나지 않고 보고 받아들이는데 소설의 경우 글로 모든 게 설명되니까 사람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좋아요.

집에 가서 본 서재가 기억에 남아요. 부엌 옆에, 화선지에 먹으로 쓴 ‘설이서재’ 종이가 붙어 있었죠.
원래 김치냉장고 자리인데 저는 김치냉장고가 없어서 자리가 텅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 저 공간을 한번 서재로 써봐야겠다 싶었죠. 냉장고에서 먹을 걸 꺼내 들고 바로 옆에서 책을 골라서 소파로 가는 루트가 생겨났어요. 아주 유용합니다. 잘 정한 것 같아요.

책장을 사 넣은 게 아니라 벽돌에 선반을 올린 아주 단순한 형태인데, 책과 초록 화분이 어우러져 아주 근사해요. 
플로리스트 친구가 생일 선물로 새벽에 와서 건설해주었어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을 틀어놓고 건설을 했죠. 그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 붓글씨는 저희 주방 식탁에서 썼어요. 먹을 갈아서, 생일 선물로 또 다른 친구가 써줬어요. 하지만 이제 책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 수습이 안 돼서 옆에 쌓아놓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기둥이 하나 생겼어요, 책 기둥.

점프슈트와 주얼 장식의 미니 드레스, 니삭스, 플랫폼 로퍼는 모두 프라다(Prada).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앞으로는? 
다 읽어서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리면서 만날 때마다 한 권씩 선물하는 거죠. 안 그러면 웬만한 방 하나가 책으로 다 찰 것 같아요.

그런데 집에 가보니 미니멀리스트 같았어요. 다른 건 없고 책만 많더라고요. 
맞아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물욕이 있었거든요. 홈쇼핑 보면서 신기한 거 보면 사고 싶고, 옷도 신발도 사고 싶었는데 올해부터 그 마음이 없어졌어요. 정말 한순간에 없어지더라고요. 제가 제일 돈 많이 쓰는 데가 책이에요. 지금은 많이 없어졌는데 만화방 아세요? 그런 곳처럼 옆으로 막 미는 책장이 있는 서재를 갖고 싶어요.

작년의 경우 굉장히 분주하게 작품을 했는데, 이제 볼 수 있나요? 
영화 <방법: 재차의>가 곧 나오고 독립영화 두 편 촬영한 것도 곧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것저것 나올 게 있네요. <야행>도 나올 예정이고 지금은 드라마 <어느 날>을 찍고 있어요.

<방법: 재차의>에서는 베일에 싸인 역할인데, 빌런인가요? 
제 역할은 공개가 안 됐더라고요. 이름만 올라가 있고 다른 캐릭터는 소개가 다 있는데 나만 없어요. 빌런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웃음) 그게 힌트예요.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 <어느 날>은 어떤 작품이에요? 
쿠팡플레이에서 하는 법정물에 햇병아리 변호사 서수진으로 나와요. 역할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고 대본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재미있는지 내 역할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편인데, 다양하게 시도하고 경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소설로 치면 서수진은 어떤 사람이에요? 
음…<밤의 여행자들>에 나오는 고요나 같은 사람?

책으로 또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얼떨결에 계약한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판권에 관심이 많아요. 판권을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보고 재미있으면 그 책을 사고 싶어요.(웃음)

요즘은 틈틈이 뭘 읽고 있어요? 
짬짬이 보고 있는데요, 소설은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를 읽고 있어요.

요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책을 권한다면요?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그 책은 저의 인생 책이거든요. ‘나는 왜 이렇게 뭘 모르지? 왜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지? 내가 이상한가?’ 하는 고민을 한창 많이 할 시기에 읽은 책인데 엄청난 위로가 되어주었죠.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좋아요. 실연당한 사람이라면 <내일의 연인들>을 추천해요. <여름의 빌라>도 잔잔하니 좋았고, 박연준 시인이 추천사를 썼는데 그게 모든 걸 말해주는 책이에요.

그렇게 행복감을 주는 취미가 있는 건 어때요?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 꾸준히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는 건 정말 복된 일인 것 같아요.

나중에 질리진 않을까요?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 많다 보니 도무지 질릴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한 권이라도 더 볼 텐데….

미니 드레스는 H&M.